가톨릭목포성지






  • 소재지 :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2동 74-78
  • 연락처 : 산정동 성당 (061) 274-1004 FAX (061) 276-4482

1.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태동지

조선시대 여러 차례에 걸친 천주교 박해로 전라남도 지역의 복음 전파에 어려움을 겪던 중,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이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하였다.

1872년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꾸준히 복음이 전파되었고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로 인해 전라남도 지역의 교우촌(공소)은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1896년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전라도 지역 순방에서 목포본당(지금은 산정동본당) 신설을 결정하였고, 1897년 5월 8일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조유도(드예, Albert Deshayes) 신부가 부임하여 목포 개항과 함께 전남지역 최초의 모(母) 본당으로서 전남지역은 물론 제주지역까지 초기 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33년 아일랜드의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파견하여 광주교구 설정을 준비하였고, 1937년 4월 13일 대구대목구로부터 지목구(교구에 준하는 개별 교회)로 설정되어 임 오웬 신부를 초대 지목구장으로 임명하였고, 교구청은 목포시 산정동 97번지로 하였다.(현, 역사박물관)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모 파트리치오 주임신부와 임 오웬 몬시뇰 교구장이 체포, 감금, 투옥되었으며 본당과 교구청은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었다.

6·25 한국전쟁 때에는 공산군 막사로 징발되었고 이곳에서 사목하던 세 분의 사제가 체포되어 순교한 사목지이기도 하다. (현재 시복 청원 중)
1953년에는 한국에 최초로 레지오마리애가 광주교구 제5대 교구장인 하롤드 헨리 신부에 의해 도입된 곳으로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본향이기도 하다.


2. 천주교광주대교구 구(舊) 교구청

천주교광주대교구 구(舊) 교구청(현재는 광주에 소재)은 1937년에 건축된 건물로 정면 중앙부의 반원 아치와 필라스터(Pilaster)로 장식된 현관 포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적벽돌조의 건물로서, 처마선 아래와 층간 사이에는 수평 돌림띠를 장식하고 수직의 긴 창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였다.

내부는 목조 계단, 천장은 석고 플라스터(Plaster) 몰딩, 행거 미서기문이 원형으로 보존된 지하1층, 지상3층의 연면적 1,235㎡(373Py)의 건물로서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513호로 지정되었다. (2012. 10. 17)

이곳은 광주교구 최초의 교구청으로 사용되었고, 성 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 성신간호전문대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건축물은 원형으로 복원 보수하여 2017년 8월 28일부터 광주대교구 역사박물관으로 꾸며 광주대교구의 역사와 한국 레지오마리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새롭게 개관하여 관람할 수 있다.



3. 순교한 세 사제의 사목지 (6·25 한국전쟁 때 순교)

1950년 한국전쟁 때 이곳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180여 명이 북한 인민군의 요구를 거부하여 간첩으로 몰려 순교 또는 행방불명되었다.

그들 가운데 이곳에서 사목하던 광주대교구 제4대 교구장인 미국인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 산정동성당 주임 아일랜드인 토머스 쿠삭 신부, 아일랜드인 존 오브라이언 보좌신부가 주님의 성전과 양들을 지키다 공산군에 체포되어 총과 칼로 위협하며 시내를 끌려 다녔다.

온갖 수모와 고통으로 수난을 당하다가 신자, 성당, 교구청, 목포와 마지막 작별을 하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온갖 형벌과 기아와 극도로 쇄신한 몸을 이끌고 북한으로 끌려가던 중 대전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고귀한 한 넋을 주님께 맡기고, 여권과 명함, 성무일도 등은 감금 장소에 두고, 착한 목자들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한 사명감을 다하고 동고동락하던 양떼들을 하느님께 맡기고, 1950년 9월 24일에 처형되는 순교를 하였던 세 분 사제의 사목지이기도 하다.

이 세 분의 사제와 전기수 그레고리오, 고광규 베드로 신학생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 명단에 포함되어 시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4. 한국 레지오마리애 첫 도입지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는 1921년 9월 7일 창시자 프랭크 더프에 의해 창설되었고, 아일랜드 더블린시에 총 본부를 둔 천주교 평신도 봉사단체로서 세계 각국에 세나뚜스(국가 평의회)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광주, 서울, 대구에 3개의 세나뚜스가 조직되어 있다.
한국의 레지오마리애는 최초로 광주교구장 서리 하롤드 헨리 신부와 산정동 토마스 모란 신부가 1953년 5월 31일 목포 산정동성당에 2개의 쁘레시디움(치명자의 모후, 평화의 모후)과 1952년 산정동성당에서 분리된 경동성당에 1개 쁘레시디움(치명자의 모후)을 설립하여 꼰칠리움 직속으로 레지오마리애가 도입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8만 명의 행동단원과 협조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천주교 신자의 약 10%를 차지하는 봉사단체로 성장하였다.

5.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

한국레지오마리애 첫 도입지인 가톨릭목포성지에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을 세계 최초로 2017년 9월 30일 건립하여 축복미사와 함께 명실상부한 성모님의 집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에서는 레지오 단원들은 물론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모신심 함양과 신앙을 쇄신하는 피정과 교육의 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설규모는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성당, 대강당, 식당, 세미나실, 숙 소, 전시실 등을 갖추고 피정과 연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최신시설이며, 250명 이상이 동시에 숙식이 가능하다.


6. 산정동성당(순교자 기념, 레지오마리애 기념성당)

1897년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이 세워졌던 가톨릭목포성지에 순교자와 레지오마리애 첫 도입을 기념하여 성당을 건립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지하1층, 지상 4층으로 성당 750석, 소성당 200석, 교리실, 식당, 전망대, 만남의 장소를 갖추고 순례자와 함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역사적인 성전건립 사업은 2020년 6월에 마무리 됩니다.